사실,몇일동안 사진을 올리고 있지만, 병래할아버지(나의 고조할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면서,

그 윗분들부터는 알고 있는 지식이 없기때문에, 문헌조사와 함께 우리할머니에게 추석즈음에 그분들에 대한 녹취가 필요할듯하다.

 

그래서,우선 나의할아버지(춘경)과 바로 밑에 묘소인 막내작은할아버지(윤경)에 대한사진을 올려보았다.

막내할아버지는 대부분 친지분들이 삶의 한부분을 같이 지내셨기에  첫째할아버지에 대한 자료를 올리겠다.

형과 막내동생의 묘소가 같이 있는모습이 보기좋다.

나의할아버지는 1919에 태어나 51년도에 돌아가셨다. -32년의 짧은 생애였다.지금으로 치면, 나보다 동생이었네.~~

그러보고니, 용정할머니는 너무나 홀로 지내셨다.

옛사진을 보면서 나의할아버지를 모색해본다.근데, 어떤분일까?

그분들 대부분이 과연 연애라는것을 하고 결혼은 안하겠지.그때사람들 모든이가, 집안끼리의 만남이였으니까...

유독,자료조사를 하면서 느낀점은, 윗분들 모두가 삼척김씨,남양홍씨,강릉최씨 집안과 결혼을 많이 하셨던걸로 조사가 되었다.

그리고,강릉김씨 우리집안이 너무나 오랫동안 삼척에 정착해있었다.

그당시만해도 버스도 없었고..그냥 그곳에서 자자손손, 이웃과 어울려 살아간듯하다.

동해시 용정동 근처가 집성촌이기에 아마도, 집안식구들이 주변에 많이 살았다.그래서,옛날에는 가족이 이웃이되고,그러니,서로가 서로를 도울수 있는 여러가지 향약이나 두레라는 제도가 일상회된듯하다. 지금으로 치자면 난사회여러분들 모두가 한동네 살았다고나 할까?

지금현실은, 세계화라는 명분으로,서로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서로간의 예의나,무관심이 일상화된 모습이 안따까울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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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는 조상의 흔적을 떠나는 여행을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순서는 성묘를 찾아가는 동선을 따라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오늘이야기의 첫번째는 나의 증조할아버지[1892-1947 김연성]와 증조할머니[강릉최씨00 1899-1982]로 시작을 해볼려고 합니다.

이 두분이 살아계실적 시대적 상황을 정리하자면 조선26대 왕인 고종이 정권을 잡던 시기였지요.

또한 흥선대원군이 10년 집정시대를 열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내정 간섭을 겪었고,개화, 수구의 양파가 대립하였고, 병자수호조약, 한·미, 한·영수호조약 등이 이루어졌다.

아마도, 이시기엔 동해의 모습은 외국인[노랑머리]들이 자주 있었을겁니다.서방세개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찼겠지요.그분들이 요즘 우리들이 해외를 자주가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게 생각하겠지요.^^

 

아무튼,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증조할아버지는 나와의 추억은 없지만, 동해용정댁에 가면 그옛날 사진들이 많이 있지만, 유독 증조할아버지의 사진들은 없습니다.

단지 향을 피우는 영정속의 사진[농군의 모습]으로만 해석이 될뿐입니다.

개인적으로 큰할아버지의 인상이,좋아보입니다.

하지만 증조할머니는 어린시절 나와의 추억이 많았습니다.
큰키와 부리부리한 눈매.정말 호랑이 할머니의 모습같네요.그래서 그런지,할아버지네 식구들이 키가 다들 큰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자주 동해 용정에 가서 자주 지내게 되었는데, 할머니댁 문풍지의 작은 유리구멍속의 멀리보이는 도로의 불빛만이 기억이 많이 나네요 그때는 할머니댁에 가면 무지 심심했었던것같아요.나의 친구들은 춘천에서 오락실 다니면서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저는 시골에서 내동생들과 함께,감(과일)따던데,뒷산에 가서 소갈비(소나무잎)줏어서 부뚜막에 앉아 방불 때우던기억만이 남아있습니다.

증조할머니가 운명하시던 날은 제가 9살이었더군요.(근데 이날의 기억은 제가 국민학교 5학년쯤인줄 알았는데,비석에 나와있는 문구로 확인해보니 지금의 초등학교 2학년이던군요)
친지모든이들이 흰색 상복을 입고, 상여를 매고 양지골로 가던 길이 생각보다 멀었던 기억이 납니다.상여소리와 구슬피게 울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어이어~디여어...]


이제는 세월이 좋아져, 이런모습은 옛전통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네요.

개인적으로,어른들인 삼촌들께서 증조할아버지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곳에 그분들의 삶의 모습을 글로 남겨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증조할아버지호를 난사라고 한 이유에 대해 궁금합니다.

원래 어떤일을 주로 하셨은지도 궁금하고요? 사람마다 개인의 취미나 특기가 있듯이 이분은 어떤쪽으로 잘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거기서, 저의 핏줄의 유전적 특징이 어디에 숨어있는지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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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많이 좋아진듯 하다.

어릴적 성묘가는길은 여름에도 긴옷을 입고,계곡같은 산길을 따라 올라갔지만,

이제는 몇년전쯤인가 동해에 산불이 나서 목장가는길처럼 걸어다니기에 수월하다.

멀리보이는 동해바다의 모습은 성묘를 가러가기보다는 국립공원과 같이 등산로를 걸어다니며(샐러리맨 대부분이 운동시간이 부족하던 찰나에 간만에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니) 아름다운 풍경 또한 좋았다.

 

나 어릴적에는 동해가는길이 싫었지만(아마도 다들 알듯이, 할머니댁은 슈퍼마켓이 없어, 군것질 할거리가 너무나 없었다.기찻길까지 가야만 시장이 나와있기에 그거리는 어린시절의 나에겐 너무나 먼거리로 기억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여행을 하듯, 따스한 추억이 있어, 동해에 자주 가고 싶어진다.

 

누군들, 서울생활이 좋다고 하지만, 나처럼 촌아이는 고향의 농촌풍경의 멋스러움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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