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는 조상의 흔적을 떠나는 여행을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순서는 성묘를 찾아가는 동선을 따라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오늘이야기의 첫번째는 나의 증조할아버지[1892-1947 김연성]와 증조할머니[강릉최씨00 1899-1982]로 시작을 해볼려고 합니다.

이 두분이 살아계실적 시대적 상황을 정리하자면 조선26대 왕인 고종이 정권을 잡던 시기였지요.

또한 흥선대원군이 10년 집정시대를 열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내정 간섭을 겪었고,개화, 수구의 양파가 대립하였고, 병자수호조약, 한·미, 한·영수호조약 등이 이루어졌다.

아마도, 이시기엔 동해의 모습은 외국인[노랑머리]들이 자주 있었을겁니다.서방세개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찼겠지요.그분들이 요즘 우리들이 해외를 자주가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게 생각하겠지요.^^

 

아무튼,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증조할아버지는 나와의 추억은 없지만, 동해용정댁에 가면 그옛날 사진들이 많이 있지만, 유독 증조할아버지의 사진들은 없습니다.

단지 향을 피우는 영정속의 사진[농군의 모습]으로만 해석이 될뿐입니다.

개인적으로 큰할아버지의 인상이,좋아보입니다.

하지만 증조할머니는 어린시절 나와의 추억이 많았습니다.
큰키와 부리부리한 눈매.정말 호랑이 할머니의 모습같네요.그래서 그런지,할아버지네 식구들이 키가 다들 큰것 같습니다.
어린시절 자주 동해 용정에 가서 자주 지내게 되었는데, 할머니댁 문풍지의 작은 유리구멍속의 멀리보이는 도로의 불빛만이 기억이 많이 나네요 그때는 할머니댁에 가면 무지 심심했었던것같아요.나의 친구들은 춘천에서 오락실 다니면서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저는 시골에서 내동생들과 함께,감(과일)따던데,뒷산에 가서 소갈비(소나무잎)줏어서 부뚜막에 앉아 방불 때우던기억만이 남아있습니다.

증조할머니가 운명하시던 날은 제가 9살이었더군요.(근데 이날의 기억은 제가 국민학교 5학년쯤인줄 알았는데,비석에 나와있는 문구로 확인해보니 지금의 초등학교 2학년이던군요)
친지모든이들이 흰색 상복을 입고, 상여를 매고 양지골로 가던 길이 생각보다 멀었던 기억이 납니다.상여소리와 구슬피게 울던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어이어~디여어...]


이제는 세월이 좋아져, 이런모습은 옛전통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네요.

개인적으로,어른들인 삼촌들께서 증조할아버지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곳에 그분들의 삶의 모습을 글로 남겨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증조할아버지호를 난사라고 한 이유에 대해 궁금합니다.

원래 어떤일을 주로 하셨은지도 궁금하고요? 사람마다 개인의 취미나 특기가 있듯이 이분은 어떤쪽으로 잘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거기서, 저의 핏줄의 유전적 특징이 어디에 숨어있는지에 대해 호기심이 발동을 합니다.

 

 

 

 

 

'조상을 찾는길 > 묘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계작은할아버지  (0) 2011.01.15
태백 작은할아버지 산소  (0) 2010.09.28
진수*진택삼촌 산소  (0) 2009.10.06
춘경할아버지&윤경할아버지 묘소  (0) 2009.09.25
성묘가는길  (0) 2009.09.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