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전 우리집안 시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2019.1108[음력 10.12]

장할아버지 시제..

기존 제사와는 절차가 너무나 다르다.

연세가 많은 어른들인지라 이제는 종가댁에서 행사를 진행한다.

유교문화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또한 모르기도 하고,,,...

아무튼 기록으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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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책을 뒤적이며,나오는 용어의 대부분은 옛지명이라 정확히 어디를 말하는지 잘모르겠습니다.

그중 주로 나오는 곳을 시간되는대로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01. 용정동
* 鳳梧洞 → 동해초등학교가 있는 마을 일대. 옛날 이곳에 오동나무가 숲을 이뤄 봉황새가 많이 날라와서 놀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 뫼밑 → 동부산업이 있는 곳 그 위쪽 일대, 산밑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 당말재 → 동해초등학교 서쪽으로 옛날 이곳에 서낭당이 있었고, 그 옆에 돌을 쌓아둔 돌무덤인 국시뎅이가 있었다고 한다.

 

02. 지흥동
* 분토골 → 초록봉에서 동쪽으로 내려온 기슭에 있는 마을. 이 골에 흰 흙이 많이 났는데 옛날 이 동네 처녀들이 시집을 갈 때 이 흙을 파서 채에 받쳐 잘 골라서 기초화장을하고, 그 위에 연지,곤지를 찍었다고 한다.
* 골말 → 분토골 북쪽에 있는 마을.
* 숯골 → 분토골 북동쪽에 있는 골. 옛날 이곳에서 참나무로 숯을 구웠다고 한다.
* 쟁골 → 북삼초등학교가 있는 골. 옛날 골이 작아서 ‘작은골’이라 하였는데 음이 변해서 생긴 이름이다.


03.. 효가동
* 효거리 → 마을 전체 이름. 효자 金謙의 정려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양짓말 → 마을 양지쪽에 있는 마을.

 

04. 쇄운동
* 나운들 → 일명 낙운들 이라고도 하는데 용산서원 앞에 있는 대동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일대.
* 언당골 → 영일 정씨 재실이 있는 마을. 북평에 들어온 영일 정씨의 시조 ‘도’의 증손인 ‘증’의 호가 彦堂이다.
* 용산 → 용산서원이 있는 마을. 이곳은 영일 정씨의 시조인 ‘도’ 의 묘가 있는 곳에서 볼 때 이곳이 좌청룡에 해당되어 생긴 이름이다.
* 왯두들 → 용산서원 앞에 있는 넓은 들.
* 설운골(서운골) → 장승골 앞내[전천] 남쪽에 있는 깊은 골, 취병산과 고제병 사이에 있는 골로 깊이가 20여리나 된다

 

05. 이도동
* 섬안마을 → 이원동 저수지가 있는 마을. 마을 뒤[북쪽]로는 전천이 흐르고, 마을 앞 남 쪽으로는 귀운골에서 흘러오는 내가 흘러 마을이 섬안으로 되어 있어 생긴 이름이다.
* 배골 → 이도동의 중심 마을.

 

06. 이로동
* 돌우[巨上] → 달방댐 바로 밑에 있는 마을, 마을 위쪽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 뇌비름 → 월평 남쪽에 있는 마을로 내를 사이에 두고 있다. 옛날 숲이 우거져 백로가 많이 날라와 생긴 이름으로 鷺飛音이라고도 한다.
* 매내골 → 노비름 안쪽에 있는 마을. 옛날 이 골에서 삼을 많이 재배하여 麻落이라 하다가 변해서 매내가 되었다고 한다.
* 월평[이름말] → 이로동의 중심 마을. 마을에 달이 비치면 굉장히 밝아서 月坪이라고 한다. 올밭들이라고도 하는데 마을에서 가장 넓은 들이 기 때문이다.

* 동막 → 이름말 아랫쪽으로 이로동 첫 마을이 된다. 동쪽이 막힌 마을이란 뜻이다.
* 홍도 → 동막 앞 내 건너 남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 붉은 복숭아 나무[紅桃]가 많이 자랐다고 한다.
* 초록당 → 초록봉에 밑에 있는 마을.
* 竹林 → 북쪽으로 높은 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나즈막한 남산이 있다. 올밭골 아랫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에 대밭이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출처:동해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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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현(金子鉉) 강릉 김씨의 후손으로 세종 8년(1447년)에 생원에 입격하여 음관으로 이천교도(伊川敎導)를 지내다 세종 29년(144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典籍), 병조정랑(兵曹正郞), 사헌부 감찰(監察)을 역임하였다.
외관으로는 청양, 청하 현감(縣監)을 지내며 많은 치적을 남겼다.
그는 만년에 낙향하여 강릉부(江陵府)에서 교수(敎授)를 지내며 교육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는 무릉계곡의 산수 경관에 매료되어 쇄운리 취병산 밑에 터전을 잡고 정착하기에 이르렀다

 

출처:.(三陟郡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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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는 말씀
만물이 생동하는 신록의 계절을 맞이하여 댁내 건강과 행운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감찰공 재실(추원재) 중수공사에 보내주신 아낌없는 성원과 관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뢰올 말씀은 금번 추원재 중수를 완공하고 기념식을 아래와 같이 거행하고자 하오니 공사간 바쁘시더라도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일시 : 2011년 6월19일 (일요일 : 음력 5월18일) 오전 11시
장소 : 쇄운동 추원재실 (우천불구)
강릉김씨대보공 감찰공파종중 회장 김유남 배상

 

 

 

추원재(追遠齋) 중수기(重修記)
본 재사(齋舍)는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휘 자현(子鉉:21世)공의 영정(影幀)을 봉안(奉安)하고 묘소수호(墓所守護)와 제향봉공(祭享奉供)을 위하여 창건(創建)한 전청(奠廳)이다.
감찰공(監察公)은 강릉김씨시조(江陵金氏始祖) 명주군왕(溟州郡王) 휘 주원(周元)님의 21세손 (世孫)평의공파조(評議公派祖)이신 중추부검지사(中樞府僉知事) 휘 지공(輊公)의 5男 中 말남(末男)으로 1404년(朝鮮太宗4年) 강릉(江陵)에서 태어나시니 천품(天稟) 영명(英明)하사 1426년(世宗8年) 23歲에 사마생진과(司馬生進科)에 오르시어 이천유학교수(伊川儒學敎授)를 지내시고 1447년(世宗29年)44세에 중시대과(重試大科)에 급제(及第)하시어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병조정량(兵曹正郞). 사헌부감찰어사(司憲府監察御史)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역임후 강릉유학교수(江陵儒學敎授)를 지내고 1465년 (世祖11年)62歲에 통훈대부(通訓大夫)로 陞進하시고 은퇴(隱退)하시었다.
公께서는 평소 무릉계곡(武陵溪谷)의 경치(景致)를 감탄(感歎)하시어 다음해(1466년) 강릉경포향원(江陵鏡浦鄕園)에서 척주용정리(陟州龍井里)에 이거(移居)하시었다가 다시 취병산(翠屛山) 절경(絶景)을 따라 쇄운리(灑雲里)에 이주하여 운곡(雲谷)이라 자호(自號)하고 사림선도교육(士林先導敎育)과 풍속정화(風俗淨化)에 전념하시며 시서(詩書)로 자락(自樂)하시다 1501년(燕山7年)신유(辛酉)12월19일 享年98歲에 쇄운리(灑雲里) 등곡산(嶝谷山)81番地 자좌(子坐)에 영면(永眠)하시었다
본 재사(齋舍)는 감찰공께서 거주(居住)하시던 유지(遺趾)에 1831년(純祖31年)묘사(墓舍)로 와옥팔간(瓦屋八間)을 창건(創建)하였고 1842년 (憲宗8年)에 동재(東齋2間)서재(西齋)6간을 중건(重建)하여 추원재(追遠齋)로 명(名)하였다.
其後 1909년(純宗3年己酉)閏3月 重修, 1938년 이건(移建), 1970년5월 중수(重修)하고 1986년 後孫 俊起會長의 성금으로 재삼 중수(重修)하였으나 보수한지 오래되어 기와가 파손(破損)되고 재목이 훼손(毁損)되어 보수(補修)가 시급한 실정이나 재원(財源)이 부족하여 제종(諸宗)이 고심(苦心)하던 차 東部그룹 俊起會長이 金3億원의 거금(巨金)을 종중에 헌성(獻誠)하므로 추원재(追遠齋)와 영모정(永慕亭)을 중수(重修)하고 재사(齋舍) 출입계단과 경내계단을 화강석(花剛石)으로 설치(設置)하였으며 경내외일대(境內外一帶)를 정비 정화(淨化)하게 되었다.
아울러 제종(諸宗)이 합심하여 모금한 헌성금(獻誠金)으로 숭조상문(崇祖尙門)의 초석(礎石)을 다지게 되었으니 이곳이 명당 중에 명당(明堂)이라 하겠다.
이곳 재사는 조상님의 얼이 담겨있는 우리 모두의 산실(産室)임을 명심(銘心)하고 다함께 숭조애친정신(崇祖愛親精神)으로 선조의 유덕(遺德)을 기리고 종친화합(宗親和合)으로 영세번영(永世繁榮)하여 영구보전(永久保傳)하기 바라며 그 전말(顚末)을 삼가 근기(謹記)하노라
서기 2011년 辛卯 5월 5일
강릉김씨감찰공파종중 근수

江陵金氏監察公派宗中 謹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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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제 (灑雲齊) 감찰공 자현(子欽)
소재지 : 동해시 세운제
현령 지(지)의 5자로 세종 8년(1426)에 사마시에 등과 성균관 전적l과 병조정랑 및 사헌부감찰(정6품)을 거쳐
청하현감으m로 외직에 나가 선정을 배풀고 삼척에 정착하였다

출처:강릉김씨 대종회

 

추운날씨때문에 용정할머님댁에서 할머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역시나 동해안 바람은 대단했습니다..

서울날씨와 다르게 영동지방의 바람때문에 추운날씨를 몹소 체험하고 왔습니다.

이번에 잠시 짬을 내어, 또다른 조상의 묘를 찾아가보았습니다.

그날따라 몹시 바람이 불어,조상의 묘를 찾아가는데 조상께서 너무 반겨주시는지? 아니면, 조상묘를 찾아오는데 제물도 없이 왔냐는지?

바람의 강약이 조상님이 저에게 한마디 하는듯한 소리마자  들었습니다.

이번에 찾아간 묘는 세운제라고 저의 파시조묘를 찾아가보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이곳의 위치가 잘 알려지지 않아 찾기가 조금은 힘들었습니다.

동해에서 정선으로 가는 기찻길이 있어서 진입하기 힘든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나이드신분들은 찾아가기 힘들것같은 구조입니다.

이곳 지리에 능통하신 중종어른들만이 찾아갈수 있는 구조입니다.

저는 이곳이 김자현 파시조의 묘라 생각해서

비석 하나에 봉분하나만이 있을줄 알았는데,

너무나 많은 비석이 있는지라, 혼란이 생겼습니다.

이 조상들은 누구의 묘일까?

아직 자료를 정리하지 않는 관계로 시간이 날때 마다 조금씩 자료를 모아볼까 합니다. 

이것은 평의공 감찰공 여운파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난사회는 결과적으로 감찰공 여운파에 소속되 있습니다.지저파는 여운파안에 소속되있습니다. 


 

나의 13대조 김장 -부평 효가리 양지산.나의 12대조 김일상의 묘소

원래 이번 난사회때 저희 5대조 6대조 할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뵐려고 했는데,교통 및 시간관계로 찾아뵙지를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어른이되다보니, 학생때처럼 시간을 내기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다음기회에 찾아뵙기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묘를 찾아가보았습니다.
어린시절에 할머니랑 같이 문중제사때 한번 찾아가보았지만 누구의 묘일까 궁금해  이번기회에 효가리도로변에 있는 묘소를 찾아가보았습니다.

아마도,여기 난사회어른분들은 한번씩은 방문했을꺼라 생각되어집니다.

저는 어린시절때 가보고 처음가보았는데, 어린시절엔 왕릉처럼 보였지만, 어른이되고 나서 가보니,

생각보다 작은 묘소더군요.하지만 주변경관이 좋기도 하고,도로변에 있어서 그런지 묘소관리가 잘되있었습니다.

아마도,문중어른분들이 주기적으로 관리를 하고 계신듯합니다.

 

위에 보이는 사진 나의 13대조 김장의 묘소와 12대조 김일상의 묘소입니다.

흔히 말해서 아버지와 아들들의 묘소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제일밑에 묘소는 비석이 없는지라 구분이 되지를 않습니다.

가끔,비석이 없는 묘소를 바라보다보면 조금은 그분의 삶의 발자취의 흔적이 없는 모습이 조금은 안따깝더군요.

두번째 사진에서 보면 저 멀리 구 삼척산업 건물이 보입니다.

 

 

 

상세한 사항은 다음기회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TIP:그래도 잘 안보이시면,

첫째,이미지를 누른다.

둘째,컴퓨터 자판에 있는 키중  CTRL을 누른 상태에서 마우스휠을 움직인다.

크게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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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이라는 카테코리를 만들어,강릉김씨 및 족보에 관련된 자료를 스크랩을 해둘려고 한다.

다시금  감찰공파에서 분파된 지저파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제7절 평의공 감찰공파
평의공 지(지)의 5자인 자현(子鉉)은 세종 갑오에 사마시에 등제하여 이천훈도로 재임중(1447)에 다시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을 거처 사헌부감찰과 강릉교수를 역임하고 동해시 송정지역 용정에 우거하다 여운리로 다시 이거하여 후손이 동해시 삼척을 중심으로 세거하였기에 평의공 감찰공파라 하고 공이 육3자로 장자 숙형(叔衡)의 후손들도 여운파가 되고 2자 보형(保衡)의 후손은 이동파.용정파.교항파.평창파가 되고 3자 이형(以衡)의 후손은 무전한다.

 

1. 감찰공 여운파(삼척)
평의공 지(지)의 5자 자현(子鉉)은 사헌부감찰를 역임하고 장자인 숙형(叔衡)은 충순위 교위를 지냈으며 동해시 여운리에 세거하였다.

3자중 장자 효석(孝錫)의 후손은 여운파가 되고

2자 효사(孝賜)의 후손은 하장면 조탄리 하장파가 되었으며

3자인 효뢰(孝賚)는 참봉을 지내고 동해시 북삼동 니로리에 세거하여 참봉공 니노파라 하였다.

참봉 효뢰(孝賚)의 장자 한경(漢卿)의 장자 언식(彦軾)의 후손은 니로파, 차자 언철(彦轍)의 후손은 교곡파, 3자 언진(彦軫)은 참봉을 지내고 후손은 여운파라 한다 

2.

1) 감찰공 니동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2자이며 충순위 보형(保衡)의 장손 위(瑋)는 참봉을 지냈고 5자중 장자 은보(殷輔)는 첨지사를 지내고  후손이 동해시 이도를 중심으로 세거하여 감찰공 이동파라 한다 전 국회부회장 진만이 있다

2) 감찰공 맹방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2자이며 충순위 보형(保衡)의 장손 참봉 위(瑋)의 4자인 은철(殷哲)은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를 지내고 하맹방에 정착하여 2자를 두었는데 장자 국인(國仁)의 후손은 맹방파가 되고 2자인 국의(國義)는 홍천훈도를 지내고 그의 2자인 시각(是珏)은 율봉찰방을 지냈으며 후손이 봉화군 소천면 대현리와 맹방을 중심으로 세거하였다.
4자인 여각(汝珏)은 중추부사를 지냈고 공의 장자 제현(齊賢)은 가선대부, 5자인 세광(世光)의 후손은 울진군 울진읍 화성리에 세거하여 후손들은 맹방파라 한다

 

3) 감찰공 용정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2자로 보형(保衡)의 장자 삼준(三俊)은 충순위 교위를 지냈고 장자 위(瑋)의 후손은 이동파가 되었으며 차자 황(璜)은 순능참봉을 지냈고 장인(丈人)의 권유로 동해시 용정동으로 이거 후손은 감찰공 용정파라고 한다

황(璜)의 2자 인복(仁福)은 장예원사평(掌隸院司評)을 지냈고
후손은 송정,용정,도경, 등봉에 세거하고 인복(仁福)의 3자 득건(得健)은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고 황(璜)의3자 인지(仁址)는 봉사를 지냈고 2자 경건(景健)은 사마시에 등제하고
후손은 사마공 광동종이라하며 황(璜)의 4자인 인록(仁祿)은 참봉을 지냈고 후손이 참봉공 평창파라 한다

 

4) 감찰공 지저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손자로 삼준(三俊)의 3자 장(璋)은 참봉을 지냈고 동해시 용정동 지저(못필)를 중심으로 세거하며 참봉공의 장자 연(鍊)은 영능참봉(英陵參奉)을 지냈고 4자중 2자인 일상(日祥)의 후손은 대구(大口),미노(未老).용정동준(龍井桐准)에 살며 4자인 두상(斗祥)은 교수와 청풍군수를 역임하여 후손은 효가종(孝街宗)이라 한다

 

5) 감찰공 교항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손자로 삼준(三俊)의 4자 계생(繼生)은 사정(司正)을 지내고 삼척 근덕면 맹방의 중심지 교항(다리목)에 분가하였다.

공의 2자 희록(希祿) 증손 사봉(泗鳳)은 찰방을 역임하고 후손은 교항파라 한다.

 

6) 감찰공 사정공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2자인 보형(保衡)의 2자 삼로(三老)는 사정(司正)을 지내고 후손이 삼척 정선을 중심으로 세거하여 감찰공 사정공 눌구파라 한다.
 
출처:강릉김씨 족보회

7대조와 8대조 할아버지산소는 매년 성묘를 가서 알수 있지만,6대와 5대할아버지 산소는 가본적이 없습니다.

김봉갑 할아버지는 조선영조1731년~1793년 정조때돌아가심/부인은 삼척김씨(1743년~1870년)
이분이 살던 시대적 배경은 영조시기입니다.드라마 이산을 보면 이해하기 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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