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山神 된 신라 대장군
문무왕 명 받아 화부산서 말갈 물리쳐
구비전승으로 신격화된 ‘단오제 주신’

강릉 남대천에 단오장이 펼쳐진다.
내일(31일)이면 여성황사에서 신을 모시고 남대천 가설 제단으로 향하는 영신행차와 화려한 불꽃놀이는 축제의 개막을 축하할 것이다.
현재 남대천 제단에는 국사성황 부부가 좌정하고 있지만 400여년전 허균은 대관령 산신은 김유신이라고 했다.
그 이전에는 대관령 신격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없다.
허균은 계묘년(1603) 강릉에서 단오제를 목격하고 자신의 문집에 지방 아전의 말을 남겼다.
대령신이란 신라 대장군 김유신입니다.

공이 젊었을 때 명주에서 유학하였는데, 산신에게 검술을 배웠고, 명주 남쪽 선지사(禪智寺)에서 칼을 주조하였는데, (중략)죽어서는 대령의 산신이 되어 해마다 5월 초하루에, 번개와 향화(香花)를 갖추어 대령에서 맞아다가 명주부사에 모신답니다.
닷새 되는 날, 갖은 놀이로 신(神)을 기쁘게 해 드린답니다.(하략)
위 기사는 대령신을 명주부사에 모시고 축제를 열고 있는 모습 즉, 강릉단오제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증언에 따르면 김유신은 강릉단오제의 주신이며, 젊어서 강릉과 인연을 맺었고 대관령 산신에게 검술을 배우고 칼을 주조하였다는 것이다.
또 죽어서는 대관령 산신이 되어 지역민들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김유신(595~673)은 신라에 투항한 신관가야 왕족의 후손이며, 백전무패라는 공적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되는 데 무관으로써 왕의 명칭을 받은 동서고금에 유일무이한 장수이다.
전란의 어려움을 겪은 민중들에게 자신을 구원해 줄 장군은 영웅이며 표상이다.
때문에 민중의 구비전승은 더욱 신격화되어 나타난다.
김유신이 강릉 화부산 아래 진을 치자 주민들을 괴롭히던 말갈족들은 그 이름 석자에 놀라 달아났다고 회자될 정도이다.
역사적으로 김유신은 강릉과 크게 인연이 닿지 않는다.
고문헌의 기록만으로 본다면 강릉에 온 적도 없다.
하지만 강릉에서는 그가 661년에 문무왕의 명을 받고 화부산에 진을 치고 말갈을 물리쳤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가 산신이 된 이유다.
강릉단오제가 절정을 향한 단옷날, 강릉시 교동 화부산사에서는 흥무대왕 김유신을 모시는 춘향대제가 열렸다.
화부산사 다례제는 단옷날과 10월 22일 두차례 열리는데 단옷날은 가락김씨 문중에서 봉행하고 10월은 강릉향교 주관으로 열린다.
김유신 사당의 존재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민중들에게 전해지는 신의 모습은 누대에 걸쳐 재포장되고 각색되기 때문에 포장지를 한겹한겹 잘 벗겨내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한다.
김유신이 강릉에 산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설을 만들어서 생각해 보자.
먼저 김유신이 강릉에 출병한 적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말갈을 물리치자 주민들이 그를 기릴 수 있다.
두 번째는 주류라고 판단되는 김주원과 견줄만한 세력을 가진 김해김씨 호족세력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두 김씨는 관계가 깊다. 강릉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은 태종무열왕의 셋째 아들 김문왕의 6대손이다.
무열왕의 왕비 문명왕후는 김유신의 누이동생이다. 거슬러 오르면 친척간이다.

따라서 지역에서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조상을 신으로 모시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김유신을 신으로 모시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세 번째는 어머니 만명과의 관계이다.
전하는 이야기는 ‘서현이 만명을 보고 첫눈에 반해 야합하였는데 만노군 태수가 되어 함께 떠나려 했다.

만명의 아버지 숙흘종이 딸을 별제에 가두고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벼락이 옥문에 떨어졌고 지키던 자가 놀라 우왕좌왕하자 만명은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와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서현은 김유신의 아버지이고 만노군은 현재 충북 진천군이다.
김유신은 진천에서 태어났고, 매년 단옷날 삼장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다.
김유신의 어머니 만명은 무속신이다.
만명, 말명, 계면, 제면 등으로 불리는데 강릉단오제에서는 제면굿으로 정성스럽게 모신다.
제면굿은 무당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가를 밝히는 굿거리로, 제면할머니 즉, 만명은 무조신(巫祖神)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주몽과 유화를 신으로 모셨다.

출처:© 강원도민일보 안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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