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시 삼화사 철불좌상 배면의 명문(사진 오른쪽) 크기는 세로 22.7㎝, 가로 34㎝로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계선(界線)이 있으며 10행 17자로 구성돼 있다.

 

 


▲ 동해시가 발굴을 추진 중인 삼화사 옛 절터.

통일신라 9세기 말 불상 추정
배면 명문 고서적인쇄판 형태
고려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앞선 금속활자를 동해시 삼화사 옛 절터에서 찾아낼 수 있을까.
동해시는 금속인쇄술과 출판문화의 꽃을 피운 삼화사 옛 절터에 대해 발굴을 추진하고 있어 벌써부터 관심을 모은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금속활자본은 ‘직지심체요절’로 고려 말 고승 백운화상이 선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어록을 모아 만든 불서로 백운화상의 제자들이 1377년(고려 우왕)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간행했다.
이 직지심체요절은 구텐베르그의 ‘42행 성경’보다 78년 앞선것으로 상ㆍ하권 두 권으로 구성돼 있다.
하권 1부가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소장돼있으며 구한말 프랑스 초대공사가 수집해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은 보물 제1132호로 지정돼 있고 2001년 9월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에 등재됐다.
이보다 훨씬 앞선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말쯤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동해시 삼화사 철불좌상.

이 삼화사 철불좌상은 지난 2002년 배면(등짝)에 총 160자 가운데 판독이 가능한 140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 삼화사 철불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철불의 등에 새겨진 문자는 고서적판형처럼 사주와 계선이 처져 있는 것이 그 특징으로 쉽게 말해 고서적을 찍어내는 인쇄판 형태를 갖추고 있다.
특히 삼화사가 있는 동해시 무릉계곡내의 등산로에는 제철유적지가 있으며 삼화동에는 일제강점기 철을 채광하던 철굴이 있는 등 제철유적지가 상존해 있는 것도 삼화사가 서적을 출판하는 금속인쇄 문화적 요소를 가질 수 있는 근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 삼화사 인근 구동마을에 있는 절인 천은사에서 고려시대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도 1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삼화사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는 기록 등이 전하고 있다.
이는 삼화사가 우리나라 고대 및 중세시대에 다량의 장서를 소장하고 이들 장서를 찍어내는 인쇄소와 도서를 빌려주는 도서관 역할도 함께 한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박성종 관동대 교수는 ‘삼화사 철불 명문에 대한 국어학적 고찰’ 이란 논문에서 삼화사 철불좌상의 명문의 좌우가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은 특이할 만한 점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명문의 첫 행이 왼쪽 끝에 위치하고 마지막 행인 제 10행이 오른쪽에 위치하며 새긴 문자들의 좌우 역시 반대로 되어 있다”며 “좌우가 반대로 새기는 것은 일반적으로 인쇄를 위한 판형의 양식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 삼화사 철불배면 명문의 경우 특히 고서적의 사각테두리와 같은 사주(四周)뿐만 아니라 세로의 편지지 줄 형태와 같은 계선(界線)이 분명히 새겨진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결국 불법을 널리 펴려는 뜻에서 불자나 중생에게 인쇄해 가도록 배려한 것일 개연성은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출처:2012.02.02 강원도민일보 전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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