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덕 할아버지는 조선정조1749년~1793년 정조때돌아가심/부인은 강화최씨(1750년~1837년)

강화최씨는 처음들어보았다. (강화최씨 강릉최씨라 보면 되겠음2020.08.07 수정)

[ 江華崔氏 ] 강화를 본관으로 하며, 고려시대 사복시소경(司僕寺少卿)을 지낸 최익후(崔益厚)를 시조로 한다.

고려 말기∼조선 초기에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용소가 있다.

그는 고려시대에 공조전서(工曹典書) 등을 지냈고, 조선 태조 때에는 회례사(回禮使)로 일본에 건너가 포로로 잡혀간 본국인 570명을 데리고 나왔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官)을 거쳐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가 태조로부터 '관서부자(關西夫子)'의 칭호를 받았다. 그 밖에 중종대사간을 지낸 최순(崔淳), 선조 때의 임진왜란에 전공을 세운 최시성(崔時聖)·최희립(崔希立) 등이 있다.

출처:(네이버지식백과참조)

 

 

여기서 잠깐 내가 궁금한것은 이 조상께서 어떻게 강화도쪽에서 오셨을까? 아니면, 강릉최씨 중 최문한쪽이 아닐까?

 

참고)강릉최씨의 시조는 3명인데 시조 최흔봉은 경주최씨 후손이고 시조 최필달은 전주최씨 후손이고 시조 최문한은 강화최씨 후손이다.

이 할아버지의 산소는 아직 찾아뵌적이 없습니다.

1787년생(정조년)-1859년(철종)졸
용정 수곡리 양지산선영
부인남양홍씨, 삼척김씨

시간이 되면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아마,우리가 말하는 핏줄(생물학적)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바로윗분인 할아버지가 김성조 할아버지인데,우리가 자주 명절때마다 찾아가 마지막으로  성묘하는 곳 

김이덕할아버지가 아들이 없어, 김성조할아버지를 양자(흔히 말하는 양자는 대부분 강릉김씨 가까운 친척분)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김성조 할아버지는 어느파에서 왔을까? 아니면 같은 파일까?

그것은 역사적 흔적에 가리워져 있을껍니다.

그래서,삶의 흔적은 어딘가에 기록에 되있을꺼란 생각도 들여집니다.

그런데 이분의 산소는 가본적이 없어 사진을 첨부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시간이 된다면 난사회 여러분들과 이분의 산소를 찾아가보고 싶습니다.

이분의 족보에 참조된 내용을 참조해보면

김학인 할아버지는 조선순조경진오월생~1888 순조 1888고종때돌아가심/부인은 강릉최씨(1827-1888년)
이분이 살던 시대적 배경은 순조 [純祖, 1790~1834]가 즉위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조선의 제23대 왕으로 이때 흔히말하는 암행어사들이 많이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순조는 11세에 즉위하여  영조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수렴청정이 실시되어 경주김씨 김관주(金觀柱)와 심환지(沈煥之) 등의 벽파가 정치를 주도하였으나, 1803년 말에 친정을 시작한 후 몇 단계에 걸쳐 그들을 축출하였다.

그 후로는 정조의 결정에 따라 장인이 된 김조순(金祖淳) 및 외가 인물들의 권력 강화에 맞서 선왕의 여러 정책을 모범으로 국정을 주도하려고 노력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또한 국사책에 나오던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 추신 ]

작업을 하면서 느낀점은 족보책을 보면서 너무나도 모르는 어휘가 나타나 당황하기 일쑤이고,시간이 될때마다 서울강릉김씨 종친회에 전화를 걸어, 궁금한점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경험과, 문서로 통해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지만 다른삼촌들 및 고모들의 경험을 살리면 그분들의 흔적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난사회의 특징은 소통부족이라는걸 느끼네요.

진필삼촌이 말하는것처럼 자주 이곳에 글을 남겨, 서로 안부도 묻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옛이야기를 이곳에 남기는 센스가 필요할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강릉할아버지가 역사학과를 졸업하셔서 많은 이야기를 알고 계실듯 합니다.

할아버지~컴퓨터 자주 활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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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2.0 2015.09. 추석연휴때]집안모임때 사진 받음

 

나의 고조할아버지[김병래1862-임술년10월]가 사셨던 시대적 배경은 헌종의 뒤를 이은 조선왕조 제25대[1849~1863] 왕 철종 시대[흔히들 알고 있는 강화도령으로 졸지에 왕이 된 인물]와 조선 제26대 왕(재위 1863∼1907)의 시대였다.

대부분 고조할아버지가 사셨던 대부분은 고종시대일꺼라 사료되어진다.

철종때에는 이시기엔 왕의 외척인 안동 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한 상태이고 ,최제우(崔濟愚)가 주창한 동학사상은 학정에 허덕이는 민중 속으로 놀라운 속도로 파급, 새로운 세력으로 확대되었으며, 만민평등을 주장하는 천주교의 사상도 일반 민중은 물론 실세(失勢)한 양반층에까지 침투되어 확고한 기반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고종때에는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내정 간섭을 겪었다. 개화, 수구의 양파가 대립하였고, 병자수호조약, 한·미, 한·영수호조약 등이 이루어졌었다.

원래 고조할아버지는 두분의 부인이 계셨다고 한다. 첫째부인은 밀양박씨인데,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고, 두번째 부인인 삼척김씨와 결혼을 해서 우리증조할아버지[김연경]을 낳았다고 한다.

지금 봉분에 보이는 옆분은 삼척김씨 묘인데, 밀양박씨 부인묘는 증조할아버지묘 근처에  있다고 용정할머님한테이야기를 들었다.

 

시간이 되면 한번가고싶은데,난사회때에는 다른분들의 묘를 볼 기회가 부족한점이 안타깝다.

난사회때가 아니라, 하루 시간을 내서 친척분들과 함께, 다른날을 찾아, 한번 조상묘 탐방을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S)여기서 임술년은 몇년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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