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들 (강릉박씨/삼척박씨)
누구나 태어나자마자 성씨를 통해 혈통의 공동체에 속해 평생을 살아간다.
강원도 영동지역의 성씨를 통해, 서로 얾겨진 강원도내 혈통의 공동체에 살아가는 가족들. 한여인이자 할머님의 성씨를 찾아보고자 한다.
강릉 박씨
강릉 박씨(江陵 朴氏)는 강원도 강릉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
강릉 박씨(江陵朴氏)의 시조 박제상(朴堤上)은 신라 제5대 파사이사금의 5세손으로 대아찬(大阿湌)을 지냈다.
강릉 박씨(江陵朴氏)의 기세조 박순(朴純)은 신라 파사이사금의 35세손으로 1174년(고려 명종 4)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보문각시어(寶文閣侍御), 이부시랑(吏部侍郞)을 거쳐 좌승선(左承宣) · 한림학사(翰林學士) · 중추원사(中樞院事) · 남경유수(南京留守)를 지낸 뒤 병부상서(兵部尙書)와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이르렀다.
또 상장군(上將軍)을 겸하면서 상장군(上將軍) 석린(石隣)의 모반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보정정국공신(保定靖國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정당문학(政堂文學)과 검교태부(檢校太傅)에 특제되었다. 신종 때는 좌복야(左僕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가 되어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다. 후에 강릉(江陵)으로 내려가 여생을 마쳤다.
삼척박씨[三陟朴氏] 경남함양 시조묘
삼척(三陟)은 강원도 삼척시 일원의 옛 지명으로 진한의 실직국(悉直國)이 있던 지역이다.
102년(신라 파사왕 23) 신라에 합병되어 만약(滿若) 또는 파리(波利)로 불렸다.
505년(지증왕 6)에 실직주(悉直州)라 하였고, 639년(진덕여왕 8) 진주(眞珠)로 고쳤다가 757년(경덕왕 16)에는 삼척군으로 개칭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 江陵) 관하에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척주(陟州)라 개칭하였고, 1018년(현종 9)에는 삼척현으로 강등되어 동계(東界)에 속하였다가 1377년(우왕 3)에 다시 삼척군으로 승격되었다.
1393년(태조 2) 삼척부로 승격되었고, 1413년(태종 13)에는 도호부가 설치되어 조선시대 동안 명맥이 이어졌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강릉부 삼척군이 되었고, 1896년 강원도 삼척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말곡면이 부내면으로 폐합되었다가 1917년 부내면이 삼척면으로 개칭되었다.
1980년에 삼척군 북평읍과 명주군 묵호읍이 통합되어 동해시로, 1981년 장성읍과 황지읍이 통합되어 태백시로 각각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1986년에는 삼척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1995년 삼척군이 삼척시에 통합되었다.
삼척박씨(三陟朴氏) 시조 박원경(朴元慶)은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의 세째 아들인 박언신(朴彦信)의 후손이다.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으로 복주(福州: 지금의 안동)로 피난가는 왕을 호종(扈從)했고, 또한 군사를 모아 개경(開京)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워 호종이등공신(扈從二等攻臣)에 책록되었다.
그 후 1365년(공민왕 14) 밀직부사(密直副使)로 다시 상서(尙書)에 오르고 삼척부원군(三陟府院君)에 봉해졌으며, 고려가 망하자 지리산(智異山)에 은거하여 후진양성에 진력,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후손들은 그를 시조로 하고 삼척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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