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들 (남양홍씨)
[정의]
강원도 강릉에 입향한 남양(南陽)을 본관으로 하는 홍씨(洪氏).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에 형성된 남양홍씨 세거지./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개설]
고려시대 춘천교수를 지낸 홍준(洪濬)이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에 당우를 짓고 우거를 하면서 형성된 남양홍씨 세거지이다.
[연원]
1.남양홍씨의 시조는 홍은열(洪殷悅)이고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일대에 입강한 시조는 홍대기(洪大棋),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 일대의 입강시조는 홍충양(洪忠陽)이다.
2.남양홍씨는 동성동본이나 조상을 달리하는 두 계보, 즉 당홍과 토홍으로 나뉜다.
당홍은 당태종이 문화사절단으로 파견한 팔학사 가운데 한 사람인 홍천하(洪天河)를 선시조로 하는 귀화파를 이른다.
당홍의 시조는 고구려 제27대 왕인 영류왕(榮留王) 때 당(唐)나라에서 귀화한 학사(學士) 홍천하(洪天河)의 후예 홍은열(洪殷悅)이다.
남양홍씨삼척 입향조이며 교수공파 시조이기도 한 홍준은 바로 이 당홍계이다.
그는 1388년(우왕 14) 조선의 태조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정치적 격변을 피하여 삼척 지역으로 은거하였는데, 교수당(敎授堂)은 그의 거소였다.
그러나 시조 홍천하 이후의 세계(世系)가 확실치 않아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지낸 홍은열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세계를 잇고 있다. 홍은열의 원래 이름은 홍유(洪儒)였다.
남양 홍씨 중에서 강원도 춘천과 삼척, 강릉지역으로 낙향한 계파는 귀화파인 당홍계입니다.
강원도 낙향 파조는 남양군파 첨의를 거쳐 삼사(三司;정3품)를 역임하고 삼중대광(정1품)에 올라 남양군에 봉해진 홍자주자(洪澍) 어른이시지요.
홍주 공은 슬하에 네 형제를 두었는데
맏이 흥(興)은 풍채가 좋기로 소문났던 어른으로 강원도 관찰사와 호조참판을 지냈고,
둘째 은(恩)은 삼사 좌윤,
셋째 징(徵)은 판밀직사, 한성부사, 대제학(정2품) 등을 역임하고 광정대부로 당산군(唐山君)에 봉해졌고,
막내 빈(斌)은 판사를 지냈다고 기록에 전합니다.”
삼척, 강릉으로 낙향한 할아버지는 교수공계입니다.
낙향조의 부친 상자직자 어른은 14세손 홍징의 후손인데 평안도 출신들을 홀대한다고 불만을 품고 반란을 주도했던 홍경래의 후손이 되기도하다.
-남양홍씨의 시조는 홍은열(洪殷悅)이고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일대에 입강한 시조는 홍대기(洪大棋),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 일대의 입강시조는 홍충양(洪忠陽)이다.
[입향 경위]
-고려시대 춘천교수를 지낸 홍준(洪濬)이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하맹방리에 정착하면서 남양홍씨 교수공파가 입향하였다. 교수당은 남양홍씨 교수공파 종택이다.
-홍충양은 강릉김씨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세 아들을 두었는데 생원공 홍인국(洪仁國), 홍인업(洪仁業), 홍인선(洪仁善) 등이다. 이 세 아들이 외가인 강릉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현황]
삼척의 남양홍씨 교수공파 종가가 자리한 맹방리는 ‘맹방(孟芳)’ 혹은 ‘매향방(埋香坊)’에서 상고하는데, 고려시대인 1309년(충선왕 원년) 용화회주 미륵의 하강을 기원하기 위해 향목(香木) 250주를 맹방정(孟芳汀)에 파묻었다는 기록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맹방리는 조선 후기 철종 연간에 상· 하맹방리로 분리되었고, 195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분화되기 이전까지 강릉김씨·평택임씨·강릉최씨·삼척김씨 등 다양한 성씨들이 이주해 오기도 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집성촌 자료에 따르면, 당시 상·하맹방리에는 남양홍씨 각각 17호와 39호가 살고 있었으며, 삼척김씨 19호, 강릉김씨 23호가 같은 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었다. 남양홍씨 교수공파 종가는 이 마을을 비롯하여 북평[현 동해시 효가동]과 삼척시 미로면 상거노리 등에 산재한 소종친회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고 있다. 특히 입향조 교수공의 음력 10월 초하루 전사[時祭]에는 인근에 사는 종중원들이 모인다.
[묘역]
홍대기의 묘소는 세거지인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에 있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산북리에는 홍인국(洪仁國), 홍인업(洪仁業), 홍인선(洪仁善)의 묘제를 위한 전청이 있다
[관련 유적]
맹방리에 있는 해운정(海雲亭)은 1769년(영조 45)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당시 홍계하의 강도소(講道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해운정은 근세 들어 남양 홍씨 문중에서 중건하여 관리해 오고 있다.
출처: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전/임종헌의 세상사는 이야기, 강원도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