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한잔

나폴레옹 가문·합스부르크 왕가, 209년만에 재결합

koreasam 2019. 5. 15. 09:18


두 가문의 후손 10월에 결혼식
19세기초 적대 끊고 정략 결혼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의 자손인 청년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후손인 여성이 결혼한다.

두 가문 결합은 나폴레옹이 조제핀과 이혼하고 1810년 오스트리아 왕 프란츠 2세의 딸 마리 루이즈와 재혼한 이후 209년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프랑스 등 유럽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12일(현지 시각) 일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나폴레옹 남동생 제롬의 5대손인 프랑스 청년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33)이 마리 루이즈 조카의 직계 후손인 올림피아 폰 운트 주 아르코-지네베르크(31)라는 오스트리아 여성과 오는 10월 결혼식을 올린다.


나폴레옹 가문의 프랑스 청년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오른쪽)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후손인 약혼녀 올림피아 폰 운트 주 아르코-지네베르크가 지난 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결혼식장으로 잡은 앵발리드는 프랑스군 전몰 용사 추모 공간과 군사박물관 등으로 구성된 파리의 손꼽히는 명소다.

영국에 의해 유배된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숨진 나폴레옹의 유해를 파리로 가져와 안치한 곳이 바로 앵발리드다.

장-크리스토프는 올림피아에게 청혼할 때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이 쓰던 왕관에 있던 40캐럿짜리 대형 다이아몬드로 만든 반지를 건넸다.

이 반지는 곡절을 겪었다.

올림피아가 파리 시내 한 호텔 앞에 벤츠 승용차를 세워뒀는데, 누군가 그 반지가 든 핸드백을 차량 안에서 훔쳐가 버린 것이다.

다행히 며칠 후 경찰이 절도범을 검거하고 무사히 반지를 회수했다.

장-크리스토프는 명문 그랑제콜인 프랑스 고등상업학교(HEC)를 마친 뒤 하버드대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따고 런던에서 사모펀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올림피아 역시 미국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신접살림은 런던에 꾸릴 예정이다.

장-크리스토프는 정략적인 결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나는 올림피아의 아름다운 눈에 빠져들어 갔을 뿐 그녀의 가계도를 염두에 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일부러 첫 부인 조제핀과 이혼하고 마리 루이즈와 재혼했던 선조 나폴레옹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유럽을 제패할 욕심이 가득했던 나폴레옹은 영국·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우군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차원에서 조제핀을 버리고 마리 루이즈와 결혼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5세기 중반부터 1차 대전까지 500년가량 오스트리아를 지배했다.

프랑스와는 오랫동안 적대 관계로 싸웠다.

1807~1809년 사이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2세는 프랑스군에 연거푸 패배해 코너에 몰렸다.

그러자 나폴레옹의 제안을 받아 딸 마리 루이즈를 나폴레옹과 결혼시켰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크게 패해 위세가 쪼그라들자 기다렸다는 듯 영국·러시아와 손잡고 1814년 나폴레옹을 권좌에서 쫓아냈다.

나폴레옹은 1814년 엘바섬으로 1차 유배를 가면서 마리 루이즈와의 4년간의 짧은 결혼 생활을 끝냈다.

프랑스인들은 장-크리스토프의 결혼을 '현대판 왕자와 공주의 만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간 더타임스는 "유럽을 호령하던 프랑스의 전성기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며 "프랑스에는 장-크리스토프에게 영국 왕실 사람들에 준하는 리더 역할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보도했다. 장-크리스토프도 그런 기대를 의식하고 있다. 그는 일간 르피가로 인터뷰에서 "프랑스를 위해 헌신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그는 "EU(유럽연합) 통합의 가치를 지켜 하나 된 유럽을 지향한다"고 했다.

나폴레옹이 무력으로 하나 된 유럽을 꿈꿨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럽 통합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출처;조선일보    파리=손진석 특파원 입력 2019.05.14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