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행/역사이야기

공적 신원증명서’ 족도란? 횡적 자녀·내외손 계보 정리

koreasam 2014. 12. 12. 10:53

족도는 족보 이전의 가계기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단선적인 세계도(世系圖)에다가 본인 또는 자(子), 여(女) 또는 사위(서·壻), 내외손까지 포함한 횡적 계보까지 대상으로 포함됐다.

세계도가 본인을 기준으로 종적인 조상 세계를 계보화한 반면, 족도는 횡적인 자녀 및 내외손의 계보를 정리한 것이다.

이러한 족도가 족보의 초기 형태로 15∼16세기 지속적으로 제작된 것은 사문서인 동시에 국가적으로 개인의 가계와 혈통을 말해주는 공적인 신원증명서와 같은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안동권씨성화보’(1476)와 ‘문화류씨가정보’(1562) 등 조선전기 족보는 종래의 족도를 보다 종적, 횡적으로 소급하거나 확대해 계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기록상 알려진 최고의 족도는 고려 말 ‘강릉김씨족도’이나 전하지 않고 1401년 제작된 ‘해주오씨족도’가 현존 최고의 족도다. 세로 115㎝, 가로 112㎝ 크기의 장지 한 장으로 작성된 이 족도에는 해주오씨를 중심으로 장흥임씨, 경주김씨, 수원최씨, 여흥민씨, 행주기씨 등의 가계가 기록돼 있다.

이밖에 16세기 초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주이씨 독락당 소장 ‘여주이씨세계’와 ‘경주이씨족도’, ‘경주손씨족도’, 또다른 ‘안동권씨족도’

등이 전한다.

출처:문화일보 최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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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김씨세고江陵金氏世稿 [A Record of the Kim Family in Gangneung ]

[정의]
조선시대 강릉김씨의 족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계보를 정리하여 간행한 족보.

[개설]
조선시대 족보의 유형은 크게 족도(族圖)·대동보(大同譜)·파보(派譜)의 세 종류로 나누어진다.
족도는 족보의 초기 형태로 일반 족보처럼 정간(井間)을 지어 기록하지 않고 단지 계보만을 알 수 있도록 붉은 선으로 연결시켜 가계를 기록한 것이다.
대동보가 전국적으로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파보는 향촌사회에서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고 사족적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었다.


[편찬/발간경위]
강릉김씨의 족도는 외손이 강릉부사로 부임하면서 강릉에서 작성되어 강릉부에 보관하였다.
강릉김씨 대동보는 강릉김씨 가운데 조선중기 이후 가장 번창하였던 벌열(閥閱)가문인 이른바 백동파(柏洞派)에 의해 서울에서 간행되었다.
반면 강릉김씨 파보는 대동보가 서울에서 간행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강릉을 비롯한 지방에서 발간되었다.


[내용]
강릉김씨 대동보 가운데 1565년에 간행된 『을축보(乙丑譜)』는 조선전기 족보의 또 다른 유형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는 친손, 외손을 동등하게 기록한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나 『문화유씨가정보(文化柳氏嘉靖譜)』와는 달리 철저하게 부계중심으로 족보를 작성하고 있다.

그리고 서얼을 기재하지 않음으로써 적서를 구분하여 명분을 바로 잡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항렬자(行列字)의 사용과 관련하여 강릉김씨의 경우 조선전기에는 형제간에만 사용하였고, 조선중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항렬자를 사용하고 있다.

강릉김씨는 족보를 통해 가문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신라 왕족의 후손임을 강조하기도 하였고, 가계내에서 배출한 현관(顯官)의 수를 늘리기 위해 친손뿐만 아니라 외손까지도 소주(小註)로 기록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작성된 강릉김씨 족보는 다른 성관의 족보에 비해 내용이 충실하고 계보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