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속 인물 다시보기]강감찬
18. 강감찬 -거란 (상)
설화 속 ‘적군 퇴치 해결사’ 칭송
강감찬 설화 65편 중 27편 강원도서 채록
8편 강릉부사로 등장
▲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날 태어났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강감찬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무덥던 어느날, 관동대 박물관에서 학예사들과 강원도민일보에 연재중인 ‘설화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더위를 잊고 있었다.
와중에 강릉 일원에 강감찬(姜邯贊, 948~1031) 설화가 많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필자의 연구로는 강감찬과 강릉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설화를 모아놓은『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된 강감찬 설화는 65편, 그 중 17편이 강원도에서 채록되었다.
후학들의 연구로 강원도에서 10편을 추가로 발굴함으로써 27편이 되었고 이 중 16편이 강릉과 관계가 있다.
타지역에서는 한두 꼭지 정도 채록되는 반면 강릉은 무더기로 나온 것이다.
또한 강감찬은 강릉에서 벼슬을 지낸 적이 없음에도 강릉부사로 소개된 설화가 8편으로 공주목사 1편, 논산현감 1편, 경주부사 1편에 비한다면 특별하다 못해 절대적이다.
강감찬의 활약을 보면 시내에서는 호랑이떼와 개구리떼, 강동과 옥계에서는 모기떼, 묵호에서는 개미떼 등 주로 떼를 지어 생활에 불편을 주는 무리들을 퇴치한다.
학계는 민중들의 생활을 방해하는 이적을 퇴치하는 해결사로 설명하고 있다.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필자의 고민에 한 학예사가 ‘혹시 거란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라며 13세기 강릉지역의 사료를 보여주었다.
『고려사』16권 김취려조에 실린 이야긴데 김취려장군과 군졸들이 거란군을 겁내 대관령을 넘지 못하고 주둔하고 있다가 지원군과 함께 명주성을 되찾고 거란을 내몰았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강릉 향토지인 『임영지』의 기록은 다르다.
‘원주와 횡성에서 패한 거란군이 대관령을 넘어와 명주성을 함락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노략질하면서 건물과 가옥을 불태우며 가축과 사람을 살상하고 수개월간 머물렀다.’
자료를 읽으면서 그동안 알알이 개체이던 구슬이 하나로 꿰어졌다.
설화가 지역민의 정서를 반영한다더니 강감찬이 퇴치한 ‘떼’는 거란군이었다.
당시 거란에게 얼마나 수모를 당했으면 두고두고 곱씹어 전승했을까.
강감찬은 고려 초 거란 10만 병력을 강물에 수장시킨 귀주대첩의 명장이다. 강릉의 민중들은 그가 그리웠던 것이다.
출처: © 강원도민일보 2014.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