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대종영에대한 단상
극작가 신봉승씨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픽션이라는 권한은 작가에게 주어진 자유방임이 아니라는 사실은 픽션의 구사보다도 더 중하다.
정몽주는 어떤 경우에도 56세에 죽어야 하고, 그 죽음은 반드시 선죽교에서 조영규가 휘두른 철퇴를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엄연한 사실(史實)은 작가의 픽션으로 무너뜨릴 수도 없거니와 또 무너뜨려서도 안 된다.
작가는 이 내용에 그야말로 엄청난 분량의 살을 붙여 드라마로 만든 것이지요.
안시성에서 고구려 멸망, 검모잠 부흥운동 등의 역사적 사실마다 대중상-대조영 부자가 반드시 개입된 것으로 나오는 설정 역시 기록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사료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죠.
염두에 둘 것은, 이것은 중국측이 자신들과 관련이 있는 부분들만 선별해서 철저히 자국의 입장에서 서술한 기록이라는 겁니다.
‘길이 끊겨서 그들을 치지 못하게 됐다’‘중국과 먼 것을 믿고 나라를 세워’ 등의 기록은 결코 객관적인 상황 판단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해를 깎아 내리려는 기록이라도 천문령 전투 이후 당나라가 다시 군대를 일으켜 대조영 세력을 공격할 수 없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것은 대조영 세력의 승전과 자립(自立)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점을 읽지 않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기록하는 기법을 쓴 것으로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봐 왔던 겁니다.
하지만 장구한 세월에 걸친 사전 준비와 노력 없이 단시일에 아무 것도 없는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무리한 해석일까요? 그렇게 볼 수만은 없습니다. 아니, 시각에 따라서는 대단히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역사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진충의 반란을 계기로 우연하게 자립하려 했고, 쫓겨가다가 덜컥 세운 나라처럼 서술된 중국 사서의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발해 건국이란 끊임없이 지속돼 왔던 고구려 부흥운동의 결실로서 수립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그 지점부터는 작가의 상상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부분인데, 드라마는 그 부분에서 성공한 편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유약하고 겁이 많은 척 하면서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는 인물을 형상화한 것이지요.꿈 속에 한쪽 눈이 먼 당태종(송용태 분)의 유령의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네놈들이 자랑하는 그 천 년의 역사를 모조리 지우고 다시 쓸 것이다. 고구려의 영토와 역사,
문물들이 다 우리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너희들은 후세에 빈 껍데기만 물려주게 될 것이란 말이다.”
사실, 이 드라마를 기획하게 된 의도가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난 대사였습니다.
당태종 유령의 입을 빌어 한국인들에게 섬뜩한 대사를 말하고 있는 것은 ‘동북공정’을 입안하고 실행한 현재의 중국 당국자들이나 다름없었습니다.또한 33회에서 양만춘(임동진 분)은 대조영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땅에 또 많은 전쟁들이 벌어지겠지. 허나 명심하거라. 백성들을 지켜내는 한, 고구려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설령 국운이 다해 왕조가 무너질지라도, 백성들이 죽지 않는 한 그 나라는 언제고 다시 일어설 수가 있다. 내 말을 꼭 명심하거라. 늘 백성들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네가 어디서 무슨 꿈을 꾸든,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솔직히 얘기해 봅시다.
도대체 어느 역사학자의 어떤 논문이나 연구서가 이런 대사를 뛰어넘는 감동을 줄 수 있단 말입니까?
바로 이것이 역사학의 영역과는 구별되며, 때로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 극(劇)의 영역인 것입니다.
헨리 제임스(1843~1916)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사가는 본래 자기가 정말 쓸 수 있는 것 이상의 자료를 가지려고 한다. 그러나 극작가는 자신이 정말로 향유할 수 있는 이상의 자유를 원하고 있을 따름이다.”
우습게 보기엔 그것이 시청자들, 다시 말해 국민들의 가슴에 남긴 흔적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큰 줄기에선 나름대로 역사 해석의 합리성을 보여준 드라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시 맨 처음의 그 ‘사극 폄하’ 발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잘못된’ 드라마가 그렇게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동안, 당신들은 과연 뭘 하셨습니까?”김 이사장의 그 말은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고, 학자로서 취할 수 있는 태도로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의 현재 위치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대응책으로 설립된 기관의 수장입니다.
그 기관이 설립될 수 있었던 데에는 국민의 간절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 뜻이란 겉으로 문제가 불거지지 않게 조용한 막후작업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측 학자들과 중국에서 비공개로 국제학술회의를 진행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그 드라마들의 긍정적인 기능을 충분히 인식하고, 드라마의 잘못된 부분과 실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부분들을 짚어내며, 그 흐름을 타고 ‘주몽과 고구려 건국 이야기’ ‘광개토대왕과 고구려의 천하관’ ‘대조영과 발해의 건국’ 같은 대중 역사서들을 함께 펴내 국민적인 관심을 끌어야 했습니다. 드라마가 가진 대국민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래야 했습니다. 민간학술단체인 고구려연구회처럼 ‘고구려 드라마들의 오류’를 짚어내는 학술회의라도 열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냉소적인 발언을 하기 전에, 바로 그 말을 하고 있는 그 분이 몸담고 있는 그 기관은, 과연 우리의 고대사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자문(自問)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 재단 건물 안의 닫힌 연구실 속에서 대중과는 담을 쌓은 역사학의 고담준론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닙니까?
출처:조선일보 유석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