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을 찾는길/족보찾기

나의 5대조 할아버지 김학인(1820-1888)

koreasam 2009. 10. 22. 09:56

아마,우리가 말하는 핏줄(생물학적)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수 있습니다.

바로윗분인 할아버지가 김성조 할아버지인데,우리가 자주 명절때마다 찾아가 마지막으로  성묘하는 곳 

김이덕할아버지가 아들이 없어, 김성조할아버지를 양자(흔히 말하는 양자는 대부분 강릉김씨 가까운 친척분)로 들어왔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김성조 할아버지는 어느파에서 왔을까? 아니면 같은 파일까?

그것은 역사적 흔적에 가리워져 있을껍니다.

그래서,삶의 흔적은 어딘가에 기록에 되있을꺼란 생각도 들여집니다.

그런데 이분의 산소는 가본적이 없어 사진을 첨부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시간이 된다면 난사회 여러분들과 이분의 산소를 찾아가보고 싶습니다.

이분의 족보에 참조된 내용을 참조해보면

김학인 할아버지는 조선순조경진오월생~1888 순조 1888고종때돌아가심/부인은 강릉최씨(1827-1888년)
이분이 살던 시대적 배경은 순조 [純祖, 1790~1834]가 즉위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조선의 제23대 왕으로 이때 흔히말하는 암행어사들이 많이 활동하던 시기입니다.

순조는 11세에 즉위하여  영조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수렴청정이 실시되어 경주김씨 김관주(金觀柱)와 심환지(沈煥之) 등의 벽파가 정치를 주도하였으나, 1803년 말에 친정을 시작한 후 몇 단계에 걸쳐 그들을 축출하였다.

그 후로는 정조의 결정에 따라 장인이 된 김조순(金祖淳) 및 외가 인물들의 권력 강화에 맞서 선왕의 여러 정책을 모범으로 국정을 주도하려고 노력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또한 국사책에 나오던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 추신 ]

작업을 하면서 느낀점은 족보책을 보면서 너무나도 모르는 어휘가 나타나 당황하기 일쑤이고,시간이 될때마다 서울강릉김씨 종친회에 전화를 걸어, 궁금한점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경험과, 문서로 통해 이야기를 꾸려가고 있지만 다른삼촌들 및 고모들의 경험을 살리면 그분들의 흔적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난사회의 특징은 소통부족이라는걸 느끼네요.

진필삼촌이 말하는것처럼 자주 이곳에 글을 남겨, 서로 안부도 묻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옛이야기를 이곳에 남기는 센스가 필요할듯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강릉할아버지가 역사학과를 졸업하셔서 많은 이야기를 알고 계실듯 합니다.

할아버지~컴퓨터 자주 활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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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2.0 2015.09. 추석연휴때]집안모임때 사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