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노비소송 고문서 보니
노비 소유권 약화된 사회추세
추노들 불법납치해 사익 추구
윤선도 낸 소송도 일부만 승소
“저와 남편 말룡 사이 소생들을 자기 노비라고 하면서 중간에 멋대로 침입한 사람의 성명과 거처를 사실에 따라 현고하라고 추고하신 바 있습니다.…제 소생들은 정복량이 잡아간 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거니와 제가 (소재를) 알고 있는 자녀는 일일이 현고하오니 상고해 시행해주십시오.”

17세기 중반 조선에서 자식을 ‘추노객’(추노꾼)에게 빼앗긴 안심이라는 여자 양인이 관가에 제출한 진술서의 일부다.

당시 추노객은 일반적으로 노비 소유주의 명령에 따라 도망간 노비를 잡아주는 사람을 일컬었지만, 실제 추노객은 이에 더해 불법적으로 노비나 양인을 납치해 팔아넘겨 이익을 취한 부류를 아울러 지칭했다는 내용의 논문이 나왔다.

 

한효정 성신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발간된 계간 <역사와 현실> 87호에 실린 논문 ‘소송을 통해 본 17세기 노비횡탈 양상: 해남 윤씨가 ‘안심’ 자녀소송 문서를 중심으로’에서 조선 중기 문인 고산 윤선도가 추노객에게 빼앗긴 노비를 찾기 위해 벌인 노비소송 관련 고문서들을 검토했다.

 

이 논문을 보면 안심은 윤선도 가문에서 도망친 노비 말룡과 사이에 5명의 자식을 낳았다.

이들은 윤선도 집이 있는 해남에서 멀리 떨어진 충남 서산에서 살고 있었는데, 1648년 어느 날 밤 추노객 정복량이 침입해 안심이 자신의 노비라고 주장하며 자식 4명과 손자 1명을 붙잡아갔다.

윤선도는 말룡의 소재를 뒤늦게 파악한 뒤 소유노비(말룡의 자식과 손자)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알고 사건 발생 12년 만인 1660년 소송을 제기한다.

이 과정에서 윤선도는 정복량의 뒤에 자신과 인척뻘인 구승원·구정 부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구승원 부자는 도망노비 브로커 송명열에게서 말룡에 대한 정보를 얻고 도망노비나 관노비를 전문적으로 납치하는 정복량에게 의뢰해 말룡의 자녀들을 빼앗은 것이다.

이들은 납치 노비들 중 일부는 팔고 일부는 추노객에게 대가로 나눠줬다.

이들은 윤선도가 소송을 하자 “오인으로 빚어진 사건이었다”며 노비 5명 중 3명만을 돌려줬고, 증거 부족으로 처벌도 받지 않는다.

한 연구원은 “당시 세도 있는 양반가라도 소유노비를 쉽게 침탈당할 수 있고 소송을 제기해도 빼앗긴 노비를 되찾고 범죄자를 치죄하기가 쉽지 않았던 당시 노비소송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추노객들은 도망노비를 주인에게 되찾아주어 노비의 임무를 수행하게 했기 때문에 노비제를 유지하는 순기능을 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타인의 도망노비나 양인을 대상으로 횡탈을 일삼아 노비제도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구실을 했다”며 “이는 노비라는 재산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려는 범죄라고 볼 수 있지만, 단순범죄라기보다는 당시 노비들이 동요하고 노비주의 소유권이 약화되는 사회적 추세를 틈타 이익을 추구했던 새로운 부류의 등장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출처:한겨례신문2013.05.14 안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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